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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4.04.27 02:27
운파(雲坡) 최관호(崔觀浩)선생 서거 70주년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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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파(雲坡) 최관호(崔觀浩)선생 서거 70주년 추모제

[구미뉴스]=독립운동가인 운파(雲坡) 최관호(崔觀浩, 1905∼1946) 선생 서거 70주년을 추모하는 행사가 8일(토) 오전10시30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436-2번지에서 열렸다.

 

서거 7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추모제는 운파 최관호선생 추모 사업회, 해평면 노인회. 해평리 노인회, 전주최씨 인재공파 해평문중이 주최한 가운데 300여명이 참석하여 그의 업적을 기렸다.

 

운파 최관호는 16세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일선지(一善誌)를 저술하신 인재(訒齋) 선생 최현(崔晛)의 13세 주손(冑孫)으로 태어나 약관 20대 초반인 1925년 구산구락부(龜山俱樂部) 창립을 시작으로 구미 선산의 청년운동과 지역사회의 진보를 이끌면서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는 1927년 신간회 선산지회 창립을 지원하였고, 1927년 말,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대학에서 잠시 수학하였으며, 1929년 만주의 북방 하얼빈에서 사재를 들여 만몽일보(滿蒙日報)를 발간하면서 신문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30년 8월 대구 조선은행폭탄의거의 주역 장진홍(張鎭弘, 1895~1930) 선생이 옥중에서 자결하자 만몽일보에 중한 양국의 공동항일전선 구축을 촉구하는 “민족이여 각성하라”는 사설을 게재하였다. 이 사설로 인하여 그는 일제 경찰에 의해 하얼빈에서 피검되어, 국내로 강제송환된 후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뒤에도 선생은 1931년 해평수리조합 반대운동의 중심에 서서 끝내 이를 저지하였고, 농민의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해평소비조합에 참여하는 등 1930년대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서 결성된 최대의 항일조직인 신간회가 해산되자 1931년 대부분 신간회의 지역간부로 활동하던 경상북도 내의 기자들로 결성된 ‘보도협조망’에 선산군 대표로 참여하였고, 1934년부터 동아일보 선산지국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1944년 서울에서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안재홍(安在鴻, 1891∼1965) 등에 의하여 비밀리에 건국동맹 결성이 추진되자 경북에서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선생을 중심으로 연계조직이 결성되었는데, 최관호는 이에 참석하였다. 건국동맹 결성이 드러나면서 심산 김창숙 선생을 비롯한 관련자들과 함께 1945년 8월 7일 왜관경찰서에 피검되어 옥중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으나 정국은 좌우의 극단적인 이념대립과 민생파탄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최관호는 해방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노력하던 중 1946년 10월 16일 군인들에 의하여 강제연행 되었고, 다음날 오전 해평지서 앞 농창(農倉)에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되었다.

 

최관호가 처형된지 1시간도 안되어 당시 수도경찰청장 장택상(張澤相, 1893∼1969)으로부터 그를 즉각 석방하라는 급한 연락이 있었으나 이미 사태가 끝난 뒤였다.

 

운파 최관호선생 추모 사업회 최열 회장(존속)은 “운파의 행보는 유학자 집안의 자손으로 품성을 어디까지나 잃지 않고 義와 孝를 다한 한 인간의 뜻있는 행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지나간 운파의 생존시 행적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증언과 자료조사를 통하여 정리해 주신 김종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운파의 독립운동 행적을 통하여 나라를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희생하신 올 곧고, 충직한 정신을 먼 훗날까지도 잊지 않도록, 자손과 후손들에게는 영원한 가르침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운파 최관호 선생의 경력

➀ 1905년에 출생

➁ 1925년 말 구산구락부(龜山俱樂部) 창립을 시작으로 구미 선산지역의 청년운동을 개척함

➂ 1927년 10월 신간회 선산지회 창립에 참여함

➃ 1927년 말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대학에서 일시 수학함

➄ 1929년 초 중국의 하얼빈에서 만몽일보(滿蒙日報)를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

➅ 1930년 8월 대구 조선은행폭탄의거의 주역 장진홍 선생이 옥중에서 자결하자 만몽일보에 “민족이여 각성하라”는 사설을 게재하고 이를 배포하였다가 일본경찰에 피검되었으며, 국내로 강제송환된 후 옥고를 치름

➆ 1931년 이육사(李陸史) 등 경북에서 활동하는 언론인들과 함께 보도협조망을 운영

➇ 1934년 5월 동아일보 선산지국 기자로 취임하여 활동함

➈ 193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차례 피검과 가택연금을 당하였음

➉ 1944년 결성된 건국동맹에 가입 활동하다가 1945년 8월 7일 왜관경찰서에 피검되어 8월 16일 석방됨

⑪ 1946년 10월 17일 해평지서 앞 농창(農倉)에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 됨

 
 
 

홍의락 국회의원(대구 북구 을, 무소속)과 장세룡 부산대 역사학 교수(운파선생과 옥중고우인 장홍상의 손자)-왼쪽부터
 
 최세훈 전주최씨 인재공파 문회 유종대표
 
 
 
 
 
 
 
 
 
 
 
 
 
 
 
 
 
 
 
 김기탁 전 국립상주대학교 총장
 
 
최선호 전 LG경북협의회 사무국장
 
 
 최재건 유일정보통신 대표이사 전주최씨 28대 족손
 김종길 구미 선산지역 근현대사 연구모임 대표
 김익동 장군
 은대전 해평동할머니 회장
 경북독립기념관 학예연구부장 강윤정 박사
 최세훈 전주최씨 인재공파 문회 유족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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