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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고향풍경

기사입력 2010.09.2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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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먼 산 바라보며 꿈꾸던 하늘은 전깃줄에 조각나 버렸다. 삶이 척박하여 코 끝이 찡- 하도록 그립던 고향에 어느새 달려와 골목길에 서있다.

    저녁 연기 피어오르던 나즈막한 고향집은 훌쩍 커버린 감나무 아래 초라하지만, 정겨운 돌담길은 어머니처럼 아직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이며, 산으로 헤집고 다니던 우리. 아름답던 유년의 자락에는 머루가 있었고 다래가 있어 더욱 행복했다. 넝쿨 아래 숨겨진 으름의 그 속살을 입에 베어 물고 그 달콤함에 얼마나 감미로운 웃음을 웃었던가? 이제 잊혀진 기억 저편에 자리한 구름 같은 으름의 속살이 터지기를 기다려보자!!!

    영롱한 붉은 보석이 영글어 가는 석류, 온 몸을 전율케하던 그 새콤함을 우리는 차마 잊지 못 한다.

    아직은 주홍빛이 옅어 풋감이지만 감홍시, 그 달콤함은 고향의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고향하늘이 붉은 빛으로 가득할 때면 , 떠나가는 철새들이 맴돌다 가는, 아! 아득한 고향의 정취.

    가을이 더 무르익을 즈음. 깍지 속의 콩들은 비좁은 공간을 못 견뎌하며, 풋내나는 콩깍지를 박차고 나올 것이다. 마치 고향의 고요함을 참지 못하고 첫 새벽 버스를 타고 떠나오듯이... 아! 그 어리석음을 누가 탓 하랴!!!

    우리는 고향을 떠나 향기 나는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까? 들깨의 풋풋한 향기는 세상살이에 멀미나는 우리의 구역질을 잠재우리라.

    옹골차게 속잎을 채워 나가는 배추잎은 초록의 꽃이다. 대형마트 진열대에 놓 인 배추는 흙에 닿은 적 없는 척 거만하지만, 빗방울 맺힌 푸성귀 하나도 정겹지 않은 것이 없는 고향의 따스함.

    저 먼 기억속의 '쿵덕쿵덕' 디딜방아는 버려진듯 허술하게 밀쳐져 있어, 다정한 어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비오는 한가위에 더욱 그립다.

    곱던 누이들은 어디론가 다 떠나가고 깔깔대던 웃음소리 귀를 맴도는데 , 토담 아래 빨간 봉숭아는 더욱 외롭다. 콧잔등이 시큰하여 하늘을 보지만 무심한 가을비만 하염없이 내린다.

    대숲에 스치는 바람에 고단한 아낙네 시름을 잊고, 풀벌레 숨어들어 더위를 식혔겠지. 아! 멀리서 다듬잇소리 들리는 듯 하다.

    우물물 길어 시원한 물에 숭덩숭덩 노각, 채 썰어 휘이 저으면 어느새 보리밥 한사발 절로 넘어 가고, 대청에 가로 누워 코골던 아제는 뒷산 풀숲에 비가 와도 누웠네.

    찬 이슬 내릴까 조바심 나는, 아! 수줍은 노란 꽃은 넝쿨 뒤로 숨고 싶구나.

    못 다한 마음 접을 수 없어, 비 맞으며 고향을 찾으니, 늙은 형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고향집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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