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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독일인 허창수 신부 선종

기사입력 2009.08.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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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벽안의 독일인 헤르베르트 보타와 신부가 한국의 왜관수도원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허창수 신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유신시절부터 한국의 인권신장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 그가 안타깝게도 고국 독일 연수 중 지난 26일 심장마비로 선종하였다.

    허 신부는 20여년을 파킨스씨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의 초대지부장을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역임하면서 한국인 노동자는 물론 외국인인 근로자들에 대한 인권신장운동에 앞장을 섰다.

    또한 허 신부는 평소 “내가 죽으면 경북 칠곡의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 묘지에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였다. 하지만 독일에서 선종한 관계로 독일의성 오틸리엔 수도원 묘지에 영면하게 되며, 한국에서의 장례미사는 9월 1일 오후 2시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거행된다.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원한다.

     

    [허창수 신부 약력]

    1941년 2월 1일 체코 Prag대교구 Seifen에서 출생

    1962년 9월 17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첫서원

    1968년 9월 1일 사제서품

    1972년 10월 8일 선교파견

    1974년 8월 성주 본당 보좌

    1975년 4월 가천성당 주임(임시)

    1976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지도 신부

    1976년 8월 대구가톨릭신학원 강사

    1979년 1월 1일 - 1985년 9월 14일 구미 인동성당 주임

    1985년 - 1991년 대구가톨릭신학원 원장

    1985년 9월 5일- 2009년 8월 26일 구미 노동 사목 연구소 소장(현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1991년 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10년간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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