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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성 갈대숲 (2008년12월28일)

기사입력 2009.02.1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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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왕산 남서편

     

    화왕산 동북편

    화왕산성(火旺山城)

    화왕산[火旺山,739m] 정상부의 험준한 암벽을 이용해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의 둘레는 약 1.8km, 동쪽 성벽의 대부분은 돌로 쌓았으며, 서쪽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높은 곳이 4m 정도로 폭은 3~4m이다. 자연암벽의 틈새는 성벽을 높게 쌓았다. 산성의 출입구로 보이는 서문(西門)은 흔적도 찾기 어려우나 동문(東門)자리 좌우의 석벽은 잘 남아 있다. 이 석벽은 다른 부분의 성벽과 달리 가로 1m, 세로 1.6m나 되는 큰 돌로 쌓았다.


    관룡사(觀龍寺)쪽의 동남쪽 성벽에서는 무너져 내려앉은 수문(水門)이 확인되고 있다.


    산성에서는 남쪽으로 영산 방면과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 현풍 방면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중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미 조선전기에 폐성(廢城)되었다 하나, 임진왜란 때인 1595년에 다시 쌓았고, 그 이듬해에는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가 이 성을 근거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내성(內成)을 쌓았다.


    성안에는 군량미를 저장하는 군창(軍倉), 9개의 샘과 3개의 연못 등이 있었다 한다. 3개의 연못은 현재도 확인되며, 산성 중안의 연못 주위에는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다. 창녕 조씨가 이곳에서 성(姓)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새긴 창녕조씨득성비(昌寧曺氏得姓碑)도 있다.


    성안의 곳곳에서는 조선․고려의 자기편들과 신라․가야의 토기편들이 출토되고 있어,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장기간에 걸쳐 화왕산성이 군사적으로 이용되었음 짐작케 한다.

     

    ▲ 억세풀 태우기

     

    2009년2월9일,대보름맞이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를 하던 중 갑자기 불어온 돌풍과 오랜 가뭄으로 바싹 마른 억새로 인해 거세어진 화재로 관광객 및 현장 공무원을 포함한 4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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