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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갑사 계곡의 단풍 절정

기사입력 2012.10.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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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뉴스]=계룡산 자락 울긋불긋 가을 단풍 최절정 이무기가 승천해 용이 된 용문폭포 명소 420년 유서깊은 삼국시대 사찰 경이로워 봄에는 공주 마곡사, 가을에는 공주 갑사의 풍경을 으뜸으로 친다고 해서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고 불린다. 가을빛으로 물든 갑사 계곡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멀리 계룡산 자락에 펼쳐지는 현란한 단풍빛이 산 아래로 번져나가는 것을 보며, 행여나 바쁜 일상에 쫓겨 단풍이 다 져버렸을까 우려했던 마음에 안도를 했다.

     

    구미에서 갑사로 가는 차창 너머로 불타오르는 단풍의 고운 빛들은 이내 탄성으로 가슴을 벅차 오르게 했다.

     

    마을마다 한적한 도로가에 길게 펼쳐 놓은 곡식들 하며, 정겨운 도리깨질을 하는 농부들의 분주한 모습에 요즘 부쩍 짧아진 햇살이 아쉽다. 창 밖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어느새, 갑사 입구에 도착했다.

     

    일상의 안락함도 무료하여 시간을 다투어 단풍을 보겠다고 몰려든 군상들의 혼란은 절정의 단풍보다 더 화려하다.

     

    입구에 북적이는 인파들의 분산스러움, 그것은 일탈을 위한 그들의 욕망!!!
    아! 차라리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자들이었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았을까? 한 잎, 단풍을 손에 쥔 어린 아이를 사이에 둔 젊은 부부가 더욱 아름답듯이 자연은 기만적인 몸부림이 아닌, 순리에 이르는 길을 배우게 한다.

     

    갑사에 이르니 몇몇 나무들은 처연한 척, 아직 푸르다. 그래도 햇살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아쉬운 계절의 흔적으로 물들고 있다. 머잖아 색이 짙어질 가지들에 앉은 햇살을 스쳐가는 바람이 휘적거린다. 단풍놀이에 한 몫을 보태겠다는 수작이다.

     


    갑사 앞으로 난 자연탐방로로 들어서니 국내에
    하나 밖에 안 남은 철 당간은 숲 속에 홀로 서 있어 흘깃 스치고 갈 뻔 했다.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을 들어서는 이는 적다. 그러나 숲은 이 맛에 오기도 한다. 이제 용문폭포로 방향을 잡았다.

     

    용문폭포는 갑사 구곡을 이루는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수정봉 등과 함께 유명하다. 용문(龍門)은 말 그대로 이무기가 이곳을 뛰어 올라 용이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기로 유명한 폭포에 다다르니, 며칠 전 내린 가을비 에 더욱 장엄하다. 산을 오르던 사람들도 장관을 이루는 폭포 구경에 넋을 잃고 서서 발을 떼지 못한다. 수정처럼 맑은 물에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모든 근심을 씻어내는 느낌이다.

     

    갑사는 그 이름에 ‘으뜸 甲(갑)’을 사용할 만큼 삼국시대의 주요 사찰 중 하나였다. 창건 시기는 서기 4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유구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통일신라 때는 의상대사가 중수하면서 신라 화엄십찰 중 하나로 그 이름을 올리며 전국의 주요 사찰 중 하나로 꼽혔다. 그 명성은 강력한 억불정책을 시행하던 조선 때도 이어져, 세종 때는 오히려 승려 정원을 70명 더 허가 받고 토지도 하사받기도 했다.

     

    또 선조 때는 정문루를 중수하고 쇠가 8000근이나 들어간 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 발생한 왜적의 침입으로 화를 면하지 못하고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 폐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란이 끝나고 즉시 중건에 착수, 선조에서 효종, 영조 대에 이르는 동안 대부분 중건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갑사는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보물도 많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 현존 유일의 철당간과 지주는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256호로 지정됐다. 역사교과서에도 실리는 갑사부도는 고려시대 부도 중에서도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또 갑사에는 옛 한글의 중요한 연구 자료인 월인석보 판본이 보전되고 있다. 월인석보는 세종 때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세조 때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편한 것으로, 세조가 왕세자 도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이 밖에도 대웅전과 대적전, 석조약사여래입상 등 대부분의 유물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27일 갑사에서는 영규대사 추모제 겸 산사음악회가 열린 흔적이 남아 있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승병을 일으켜 충청 의병장 조헌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으로 진격했다가, 관군과의 연합작전 실패로 왜군에게 포위돼 의병 전원과 함께 순국했다.

     

    그러나 이 전투로 큰 위협을 느낀 왜군은 전라도 침공을 포기하게 돼 매우 중요한 전략적 효과를 거뒀다. 영규대사와 갑사와는 어떤 인연이 있어 추모제까지 열리나 알아보니, 영규대사가 바로 갑사에서 출가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갑사에서는 매년 가을 영규대사 추모제와 산사음악회를 열고 있다. 이 때는 계룡산 단풍의 본격적인 절정기이기도 해, 수려한 가을 단풍이 놓인 산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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